나는 처음부터 끝까지,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. 나의 세상은 무채색이었다. 색맹으로 살았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. 하루하루 이어가는 삶, 그 삶을 어머니가 계셨기에 버틸 수 있었다. 가장 기저로 떨어지면 더는 내려갈 곳이 없어 무섭지 않다고 하던가. 두렵지 않다 하던가. 그런 얘기들은 순전히 거짓이다. 나는 태생부터 이곳 출신이었기 때문에 머무르는 게 오히려 이치에 맞는 것이다. 아늑하고 고요한, 볕들 날 없는 나의 고향.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 치지 않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지나갔다. 가끔씩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도 있었으나, 구정물 통 속으로 직접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 하였다. 어머니 이외에 아무도 이런 나를 원하지 않았다.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.
너를 만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, 굳이 세상을 색칠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. 네 주변은 밝지 않나. 그 정도의 빛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충분하다. 딱히 네가 선한 사람이라서, 선망 받는 인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. 오히려 얼 빠진 면모가 화를 돋구곤 하지.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병신 같이 네 색을 아름답다 느끼는 게 이유라면 이유라 할 수 있겠다.